티스토리 뷰
중국이 반도체 자립을 국가 전략으로 추진하며 글로벌 산업에 큰 변화가 일고 있다. 한국은 반도체 강국으로서 중국과 깊은 기술 및 수출 의존 관계를 유지해 왔으나, 중국의 기술 독립이 본격화되면 경쟁과 협력이 동시에 발생할 수밖에 없다. 본 글에서는 중국 반도체 자립의 배경과 추진 현황, 한국 산업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 전략을 다각도로 분석한다.
중국의 반도체 자립 추진 배경과 삼성전자의 대응
중국의 반도체 자립 움직임은 단순한 기술 발전을 넘어서 지정학적 대응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2019년 미국이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공급 차단 조치를 시작으로, 중국은 자국 반도체 산업의 취약성을 절실히 인식하게 되었다. 특히 핵심 기술과 장비에서 대만, 한국, 미국 등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만큼, 자립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이에 중국 정부는 2014년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기금(대펀드)'을 설립하고, 2015년 ‘중국제조 2025’를 통해 반도체를 1순위 전략 산업으로 지정했다. 삼성전자는 중국의 이 같은 전략 변화에 긴장하면서도, 동시에 현지 시장에서의 기회를 살피고 있다. 시안에 대규모 낸드플래시 생산공장을 운영 중인 삼성전자는 중국 정부로부터 다양한 세제 혜택과 규제 유예를 받고 있다. 이는 중국이 자립에 도달하기 전까지 해외 기술 의존을 최소화하려는 과도기 전략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기술 자립이 점차 가시화되면, 삼성전자의 현지 생산기지 역할은 축소되거나 경쟁에 직면할 수 있다. 실제로 중국은 메모리 반도체에서 '창신메모리(YMTC)'를 중심으로 3D 낸드 개발을 추진하고 있으며, 파운드리 부문에서는 'SMIC'가 공정 미세화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연구개발(R&D)을 강화하고 있다. 다만 여전히 최첨단 공정(5nm 이하)에서는 한국과 대만 대비 기술 격차가 존재한다. 삼성전자는 이러한 간극을 유지하고 기술 우위를 강화하기 위해 차세대 메모리(8세대 V낸드, GAA 공정 등) 및 인공지능 반도체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추가로, 중국 정부는 EDA 툴 및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 개발에도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으며, 이는 삼성전자가 주력하는 시스템 반도체 영역에서도 중장기적 위협이 될 수 있다. 이처럼 중국의 전방위적 기술 내재화는 단순히 생산 영역에 국한되지 않으며, 설계부터 소재, 패키징까지 전체 밸류체인을 아우르고 있다는 점에서 삼성전자에게는 복합적인 대응 전략이 요구된다.
한국 반도체 수출 구조의 현실과 위협
한국은 반도체 산업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다. 2023년 기준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17%이며, 이 중 중국 및 홍콩으로의 수출은 전체 반도체 수출의 약 36%를 차지한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는 중국 내 서버, 스마트폰, PC 제조업체에 대량으로 공급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중국이 국산화를 적극 추진하면서 한국의 수출 구조는 점차 위협받고 있다. 중국은 자국 반도체 사용 비중을 높이기 위해 '신뢰할 수 있는 공급망' 전략을 펼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외국 기업 의존도를 줄이고 있다. 정부는 국산 반도체 사용에 보조금과 인센티브를 부여하며, 관공서와 국영기업에는 자국 반도체 사용을 사실상 의무화하고 있다. 이로 인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수출 물량은 줄어들고 있으며, 단가 경쟁에서도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또한, 미국의 ‘CHIPS and Science Act’ 및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는 한국 기업에 이중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 기업들이 중국 내 공장을 증설하거나 최신 공정을 도입하는 데 제한을 걸고 있으며, 이는 장기적인 수출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은 미중 갈등 속에서 중립적인 산업 외교를 펼치고자 하지만, 기술과 경제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쉽지 않은 문제다. 한국의 소재 및 장비 기업들도 이 영향을 피하기 어렵다. 동진쎄미켐, 한미반도체, 원익 IPS 등은 중국 시장에 상당한 매출 의존도를 보이는데, 중국이 자체 공급망을 강화하면 이들 기업 역시 공급처 다변화와 기술 고도화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이제 단순히 수출 비중을 확대하는 것이 아닌, 기술 협력을 기반으로 한 장기적 사업모델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더불어, 반도체 생산만큼 중요한 설계 및 IP(Intellectual Property) 산업에서는 한국의 경쟁력이 아직 제한적이다. 중국이 EDA 및 팹리스 분야에 집중 투자하면서, 장기적으로는 한국이 설계 영역에서도 수출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는 산업구조 전반의 리디자인이 필요한 대목이다.
기술 협력 가능성과 장기 전략
중국의 반도체 자립은 한국에게 위기이면서도 기회일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경쟁 요소가 부각되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술 협력과 공동 개발이라는 방식으로 상생의 길도 모색할 수 있다. 중국이 선진 공정 기술을 완전히 확보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며, 이 과도기 동안 한국의 기술력은 필수적 자원으로 간주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내 고부가가치 반도체 생산과 함께, 테스트 및 패키징 기술을 현지 파트너와 공동 개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예를 들어, 차세대 패키징 기술인 FOWLP, Fan-Out 방식 등의 협업은 중국의 기술 내재화 니즈와 한국의 기술 우위가 절묘하게 맞물릴 수 있는 분야다. 또한, EDA 소프트웨어나 반도체 설계 자동화 툴 등 소프트웨어 기반 협력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중소기업 역시 주목해야 한다. 한국의 반도체 생태계는 중소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경쟁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 이들 기업은 현지 합작투자나 기술 라이선스 형태로 중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 다만 기술 유출, 지재권 침해 등의 리스크는 분명 존재하며, 이를 방지하기 위한 강력한 계약 구조와 법적 장치가 병행되어야 한다. 정부 차원의 대응도 중요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첨단산업 글로벌 협력 전략'을 수립하고, 한국 반도체 기업의 해외 진출을 전략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또한, 중국 시장의 규제 변화나 기술 동향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정보 플랫폼을 구축하고, 산·학·연 연계를 통해 지속 가능한 협력 모델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단순한 기술 협력을 넘어서, 공동 R&D센터 설립이나 반도체 인재 교류 프로그램 등의 장기적 플랫폼 구축도 고려할 시점이다. 이는 중국과의 기술 외교 차원에서도 긍정적 신호를 줄 수 있으며, 한국 반도체 생태계의 글로벌 영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중국의 반도체 자립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며, 한국 산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단순한 위협으로만 바라보기보다, 기술 협력과 상호 보완적 파트너십을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해야 한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정부까지 모두가 전략적 사고와 실행력을 갖춘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래는 준비하는 자에게 열린다.